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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나대로혼자서간다 줄거리 등장인물

by MOVIE75 2025.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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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영화 Ora, Ora Be Goin′ Alone2021

나는나대로혼자서간다

정략결혼을 피해 도망친 도쿄에서 ‘슈조’와 운명적 사랑에 빠진 ‘모모코’는 오랜 시간 가족을 위한 삶을 살아간다.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혼자 남게 된 모모코는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만끽하며 새로운 ‘홀로 라이프’를 펼쳐나가기 시작하는데... 찬란했던 젊은 날의 기억과 함께 새롭게 꽃 피우는 모모코의 인생 후반전!

 

다나카유코


일본 드라마 혹은 영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최소 한 두번은 마주했을 일본의 국민 배우이다. 한국 배우로 치환하자면 김혜자, 고두심 정도의 포지션과 비슷하지만, 이 둘과 달리 20대 시절에는 귀여운 외모나 요염한 연기로 큰 인기를 누린 바 있다. 이후에도 착실히 커리어를 쌓았고 2010년 자수포장을 수상했다.

오사카 출신으로 중학교 1학년 때 회사원인 아버지의 전근으로 삿포로로 이사를 갔다. 이후 메이지 대학 문학부 연극학과에 진학해 1979년에 졸업했다. 재수생 시절 노인들에 섞여서 빌딩 청소를 했던 적이 있다고 한다. 아르바이트를 하려 했는데, 홀서빙 알바는 귀찮을 거 같은 반면 빌딩 청소는 정해진 시간 안에 자유롭게 청소만 마치면 된다길래 했다고 한다. 시급 300~350엔 정도였다고 한다.

취업 시즌에 명문 극단인 '문학좌'에 응시했는데 운 좋게 붙었다고 한다. 처음엔 여배우가 아닌 조명 일을 하고 싶어서 지원했다고 한다. 하지만 권유받은대로 1979년 NHK 연속 TV 소설 마네짱에 오디션을 보게 되었는데, 주인공의 여동생 역으로 발탁되며 정신 차리고 보니 여배우로 데뷔하게 되었다. 이후 1981년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여우조연상, 신인배우상을 수상했고, 1983년에는 영화 '아마기 고개'로 몬트리올 국제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오싱에서 남편 역을 맡은 배우 나미키 시로의 인터뷰에 따르면, 자신은 '문학좌'의 야간부여서 접점은 없었다고 한다. 다만 주간부에 굉장한 여배우가 있다는 말을 들었었고, 그녀가 야간부 배우들에게 연기를 보여주는 기회가 있었는데 완전히 레벨이 달랐다고 한다.

그녀가 국민적 여배우에 오르게 된 작품은 일본에서 1983년부터 방영된 NHK 연속 TV 소설 <오싱>으로, 평균 시청률 52.6%, 최고 시청률 62.9%라는 일본 TV 역사상 최고 시청률 기록했다.[2] 사회적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의 인기를 누렸다. 이 드라마는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고, 이에 중국과 이란 등에서도 다나카 유코는 인지도가 꽤 있는 편이다. 반면 당시 한국은 일본문화가 금지였던 시절이라 대부분 2000년대 이후 알게 된 사람이 많은 편. [3]

귀엽고 단아한 외모지만 특유의 분위기 있는 목소리와 요염하면서 어딘가 다크한 이미지도 가지고 있는 입체적인 매력으로 다양한 배역을 도전해 왔으며, 젊은 시절부터 수위 높은 노출 연기나 베드신도 하는 등 상당히 연기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이다. 오싱 역의 경우도 기자나 동료 배우가 다음과 같이 평한 바 있다.# 그녀의 연기에는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색기가 있었다고 한다. 단순히 근면하게 일하는 여성의 모습이었다면 그렇게 국민적 성공을 거둘 수 없었다고 봤다.

2010년 중일합작 드라마 <창궁의 묘>에서 서태후 역을 하기도 했다. 처음에 중국에서는 중일합작으로 제작되고 서태후 역을 일본인 배우가 맡는다는 사실에 다소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으나, 막상 방영이 되고 나서는 고증이 매우 훌륭하다고 칭찬하는 반응을 보여 덕분에 더우반에서도 10점 만점에 8점대의 높은 평점을 받고 있다.

2010년 각본가 사카모토 유지가 쓴 마더에서 명연기를 선보였으며, 이후에도 사카모토 유지 작품에 자주 출연하고 있다. 2023년에는 사카모토 유지가 각본을 맡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괴물에 출연하여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국민적 가수 사와다 켄지와의 불륜 스토리가 유명한데, 사와다는 이미 1975년 이토 에미와 결혼했던 유부남이었으나 1982년 영화 출연으로 만난 다나카 유코와 불륜에 빠져 1987년 18억 1,800만엔의 위자료를 지불하고 이혼했다. [5] 이후 1989년 결혼해 지금까지 부부로 지내고 있다. 다나카 유코가 80년대 당시 가수로도 활발히 활동했는데, 사와다 켄지가 앨범 작업을 맡았었다.

 

아오이유우

 

패션지 모델 활동 등을 하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릴리 슈슈의 모든 것>으로 첫 영화 출연을 했으며 이 작품을 계기로 연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진로를 배우로 하려는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2004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과 연기를 두고 망설이고 있었는데, 영화 <하나와 앨리스>로 한국의 부산국제영화제에 방한해 레드카펫을 걸으며 영화 팬들의 환호를 접하고 흥분하는 인상 깊은 경험을 한뒤(너무 좋아서 호텔로 돌아와서도 뛰어다닐 정도였다고) 대학을 중퇴하고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다.

2006년 영화 <훌라걸>에서 연기로 제30회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여우조연상, 제49회블루 리본상 여우주연상을 비롯한 많은 영화상을 수상하며 처음으로 스타덤에 올랐고, 2008년 드라마 <오센>에서 드라마 첫 주연을 맡았다.

2012년 광고 촬영차 머리를 짧게 잘랐었는데 워낙 긴 시간 동안 스타일 변신 없이 긴 머리의 분위기 미인 이미지를 고수해 왔던 터라 한일 양국에서 상당한 반향이 있었다. 네이버 모바일 메인에 떴을 정도, 당시 안 어울린다는 반응들이 다수였고 딱히 본인이 아주 원했던 건 아니었는지 그 이후 다시 자르는 일 없이 쭉 길러 2014년 <닥터 린타로>에서 완전한 장발로 복귀했다.

드라마 보다 영화 위주로 활동하는 여배우로 주요 작품으로는 릴리 슈슈의 모든 것, 하나와 앨리스, 허니와 클로버, 백만엔걸 스즈코, 훌라 걸즈,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바람의 검심 실사판 시리즈, 이름 없는 새 등. 이와이 슌지 감독의 작품에 세 번이나 출연했고 일본에서 대표적으로 친밀한 감독-배우 관계로 유명하기에 그의 페르소나로 보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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