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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 건국전쟁 대한민국 이승만 줄거리 리뷰 다시보기

by MOVIE75 2024.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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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전쟁
1945년 해방 이후 남과 북은 서로 다른 길을 걸어 왔다. 자유를 억압하고 인권을 탄압하는 공산주의 독재 국가 북한과 자유 민주주의에 기초한 경제적 번영의 길로 들어선 대한민국. 두 나라는 같은 언어, 역사, 인종을 공유하면서 어떻게 극단적인 두 나라로 갈라졌을까? 그 커다란 차이를 만든 사람은 누구였을까?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들고 지켜내기 위해 애썼던 건국1세대들과 이승만 대통령의 땀과 눈물, 투쟁을 조명한 작품.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았던 대한민국 건국과 이승만 대통령의 역사” “제작기간 3년, 진귀한 기록 필름과 국내외 20여 명의 증언자를 토대로 역사적 사실을 완벽 복원하다" 
평점
-
감독
김덕영
출연
-

 

건국전쟁

 

영화 건국전쟁에서 이승만대통령의 공은 6.25 사변을 미군에 도움을 청해 잘 막은 것과 농지개혁으로 지주들만이 가지고 있던 토지를 국가가  3㏊(3町步,1정보는3000평)이상은 가지지 못하도록 하고 국가가 사들여 소작농들에게 팔고 돈이 없는 소작농들에게는 몇 년에 걸쳐 갚게 한일이다. 잘못한 일은 3.15 부정선거로 장기집권하려 하였던 일과 반민특위법 때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국민70%는삼일운동과임시정부를수립한1919년을대한민국건국으로본다앞줄왼쪽부터 신익희 ,안창호 ,현순 .뒷줄김철 ,윤현진 ,최창식 ,이춘숙 .

 

건국전쟁영화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3.15 부정선거는 대통령측근들 권력욕으로 비롯된 사건이라고 보고 있고 반민특위법으로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일은 친일이라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고 아무튼 조선인이기에 용서했고 이승만정권초기각료들은 독립운동가로 이루려 했다 한다.

 

1948년 8월 5일, 첫국무회의 를 마친대한민국초대 내각 앞 줄 왼쪽부터 전진한 임영신 안호상 이인 이범석 이승만 윤치영 김도연 조봉암 장택상 뒷 줄 왼쪽부터윤석구 김동성 민희식 유진오

 

이승만대통령은 대한민국건국을 임시정부가 생긴 1919년이라고 말하지만 김덕영감독은 이승만대통령이 건국했다 주장하고 있고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고 1년 후 포로협상을 하기 위해 고지전을 3년간 할 때 북한 측은 모든 포로를 북한으로 보내라 하고 반공포로는 보내지 않겠다는 엇갈린 주장으로 협상이 길어졌다.

2024.02.24 - [영화] - 찰리채플린 시티라이트 위대한독재자

 

이승만은 반공포로를 자신의 판단으로 풀어주어 미국에서 극비리로 이승만대통령을 암살하려 하였으나 실패했다.

 

한미상호방위조약1953년

 

무상경제원조와 주한미군이 머무는 두 가지 조건으로 휴전했다.3.15부정선거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고 이화장에서 찾아오는 학생들에게 용돈을 주며 지내다 1960년 5월 하와이로 가 과거 동지들을 만나고 귀국하려하였으나 대통령권한대행 허정은 입국을 불허했다. 1964년 6월 위장출혈로 쓰러지고 1965년 7월 하와이병원에서 운명을 달리했다.

 

이제 제천명은 다했습니다. 우리민족앞날에 은총과 축복을 주세요
국방에서나 경제에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지지않게해주십시요 주권을 잃은 나라를 찾는것은 어려운일이니
국민들은 과거사를 교훈으로 다시는 노예가 되지않도록 노력해주시길 바랍니다

김덕영감독인터뷰
이승만 죽이기는 北의 공작입니다 이제 진짜 이승만을 마주하세요 전쟁 때 한강 다리 폭파하고 도망간 이승만은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다 거짓말이었고 좌파들이 교묘하고 사악하게 독재자 이미지를 들씌운 거라고 비판했다. 미국 CIA(중앙정보국) 자료를 확인했는데 그 담화문 어디에도 국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는 없다고 했다. 전황이 어려운데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이 도우러 온다. 열심히 싸우고 있다고만 했으니, 명백한 거짓말입니다. 한강 다리 폭파 사건도 왜곡이라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된 진실공방 및 이승만 대통령의 책임 범위와 관련된 논쟁은 한강 인도교 폭파 문서에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조선일보 기자가 영화판에는 좌파가 9할 이상인데 드물게 우파라고 칭찬하자 김덕영 감독은 제가 보기엔 좌파가 99.9%이고 우파 영화인은 고독한 외톨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좌파들이 근거를 가지고 반박하면 좋을텐데 그러질 못한다고 비판했다.건국전쟁을 본다는 건 386 운동권 세대에게 익숙한 해방전후사의 인식에 가려져 있던 세계를 마주하는 일과 같다고 하며 이승만 지우기, 이승만 죽이기라는 거대한 공작의 설계자가 북한이며 남한의 주사파 운동권은 그 지령대로 움직였다고 비판했다. 386으로 불린 저희 세대가 이승만 대통령한테는 죄인이라고 86세대 책임론으로 비판했다.
김덕영 감독은 아버지가 호적은 등록했지만 가계를 돌보지 않는다면 그게 가정인가요?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라고 하며 영토·국민·주권은 기본이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토양은 이승만 대통령이 만들었다고 밝혔으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세력이 벌인 역사전쟁을 포착했다고 인터뷰했다. 따라서 영화 제목의 건국은 1948년 8월 15일을 가리킨 표현으로 해석될 수 있다. 다만 건국절 논란에서 서술하였듯, 현재 대한민국 학계에서는 1919년 설(3.1 외 네 가지설), 1948년설(7.17, 8.15), 1919년과 1948년을 아우르는 병립설, 단군기원설(개천절) 등 여러 가지 형태로 의견이 다양하다.

 

※ 이승만대통령 : 대한민국초대대통령은 1875년 3월 26일에 황해도평산도호부마산방삼리능안골에서 출생하여 1965년 7월 19일 미국 하와이주호놀룰루카운티호놀룰루시카이무키구마우타네리아요양원에서 사망했다.
 
1895.4 : 배재학당 입학
1898.1 :  《협성회회보》 주필
1898.4 : 《매일신문》 사장
1905.2 :  미국 조지 워싱턴 대학교 2학년 입학 (철학 과정; 정치학 전공)
1907.6 : 미국 조지 워싱턴 대학교 컬럼비아 과정 학사
1907.9 : 미국 하버드 대학교 대학원 사학 석사 과정 입학
1908 : 미국 하버드 대학교 대학원 사학 석사 과정 수료
1908.9 :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 대학원 박사 과정 입학 (정치학, 국제법 전공)
1910.2 : 미국 하버드 대학교 대학원 사학 석사
1910.7 :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박사
1913.8 : 미국 하와이 한인기숙학교교장 겸 한인기독학원 원장
1914.7 : 하와이 한인여자성경학원 설립
1919.9.11. ~ 1925.3.21 : 초대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
1948.5.31.~1948.7.24 : 초대 국회의장
1948년 7월 24일 ~ 1952년 8월 14일 : 초대 대통령
1952년 8월 15일 ~ 1956년 8월 14일 : 제2대 대통령
1956년 8월 15일 ~ 1960년 4월 27일 : 제3대 대통령

1875년(고종 12년) 조선 황해도 평산에서 아버지 이경선과 어머니 김해 김 씨 김말란 사이에서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세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승만은 태조 이성계의 18대손이자 태종 이방원의 장남인 양녕대군의 16대손이다.

이후 배재학당에서 수학하며 신학문을 연마하였고, 독립협회 만민공동회, YMCA에서 활동하였다. 대한제국 하에서 관직을 맡기도 했으나, 고종이 독립협회 지도자들을 체포 구금하고 만민공동회를 무력 진압하는 과정에서 박영효의 황제퇴위 음모에 가담한 사실이 있어 5년 7개월 간 한성감옥에 투옥되기도 했다. 러일전쟁 중에 사면되어 을사조약의 국제법적 부당함을 주장하는 민영환의 밀사로 미국에 파견돼 활동하였고, 한국의 주권회복을 위한 청원외교를 전개하였다.

이후 한성정부의 집정관총재와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을 역임했고 이후 국무위원, 주미외교위원부 위원장 등을 지내며 주로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광복 이후에는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를 반대했고, 대한민국의 정부 수립을 주도했다.

초대 대한민국 국회의장을 거쳐서 1948년 국회 간선제로 치러진 제1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어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했으며, 이후 직선제로 바뀐 1952년 2대 대선과 1956년 3대 대선에서도 2 연속으로 도전해 왔던 무소속 조봉암 후보를 이기면서 총 12년 동안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지냈다.

대통령 재임 중 대한민국 정부 수립, 대한민국의 국제적 승인, 농지개혁, 초등학교 의무교육,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대대적인 학교 건립, 평화선 선포 등과 같은 족적을 남겼으며, 6.25 전쟁과 같은 국가적 위기를 겪기도 하였다. 그러나 발췌 개헌, 사사오입 개헌 등 독재 권력을 추구하여 국민들의 반발을 샀고 1960년 3.15 부정선거가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 4.19 혁명이 일어나자, 책임을 지고 대통령직에서 하야하였다. 이후 미국 하와이에서 말년을 보냈고 1965년 향년 90세로 세상을 떠나 고국에 안장되었다.

 

※ 토지개혁

농지개혁은 1949년 6월 21일에 제정, 공포된 〈농지개혁법〉에 의거 1950년에 실시한 것이다. 당시 농지개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불가피한 이유는 첫째, 8·15 광복 직후의 정치적 불안을 해소하고 민주국가 건설의 토대를 마련하려는 데 있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당시 우리나라 농지의 소작비율은 전농지 222만 6000㏊의 65%인 144만 7000㏊가 소작지였다. 그와 같은 많은 소작지에서 가혹한 소작료를 지불하고 있던 농촌경제는 매년 빈곤의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광복과 더불어 민주의식과 평등의식이 고조되면서 사회적 혼란이 적지 않던 때에 일본인 소유농지였던 29만 1000㏊의 귀속농지 처리 등 농지제도의 개혁이 요청되었다.

농지개혁을 더욱 서두르게 된 것은 우리보다 앞서 1946년 3월 5일 농지개혁을 단행한 북한이 농지개혁을 공산주의 우월의 선전수단으로 활용하여 사상적·정치적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었으므로, 하루빨리 농민의 숙원인 농지개혁을 전면적으로 단행하여 정치적 불안정을 완전히 해소해야 할 필요성이 진지하게 요구되었기 때문이었다.

둘째, 사회적 이유로 농촌의 반봉건적 사회구조의 개선을 통해 농촌사회를 근대화할 필요성이 있었다. 전통적인 지주와 소작인 사이에는 경제외적인 신분적 예속관계가 계속되고 있을 때, 광복과 더불어 월남동포와 해외동포의 귀환으로 좁은 농지의 소작권을 둘러싼 소작료율이나 경작권분쟁 등은 사회적 혼란을 가중시켰다.

따라서 소작료의 인하나 소작쟁의 조정 등 미온적 조처로서는 지주 대 소작인 관계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기 어려웠다. 이에 사회적 불안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농지개혁이 절실히 요청되었다.

셋째, 농업생산성의 효율화를 기하자는 경제적 이유에서였다. 소작제 하에서는 농민의 생산의욕을 감퇴시키고 더구나 기생지주의 전통적 고율소작료로 재투자의 길이 막힌 소작농은 농지개혁의 계기 없이는 빈곤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다.

따라서 소작농에게 농지의 소유권을 주어 자작농 화하여 농업 생산의욕을 고취시키고 부족한 식량을 증산하게 하는 한편, 지주의 경제적 수탈과 경제외적 강제를 해소하여 농가경제의 향상을 도모해야 하였다. 뿐만 아니라 농촌 내의 유효수효를 확대하여 공업생산의 발전을 자극할 필요성이 요청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이의 파급효과로 나머지 소작지도 사실상 농지개혁에 준하는 조건으로 양도되었음을 볼 때, 농지개혁은 일단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농촌사회의 소작을 둘러싼 사회적 마찰을 해소하고 사회적·정치적 안정과 농촌의 민주화를 가져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자작농이 시작되면서 농업생산력 증대의 복합 요인으로 농지개혁에 의한 효과를 따로 떼어 말할 수는 없으나, 증산적 방향으로 유도되었던 것은 틀림없다.

다만 농지개혁이 겨냥했던 지가보상을 받은 지주들의 일반 기업에의 참여는 지가 상환시기와 인플레이션 등으로 얼마나 그 효과를 거두었는지는 의문이다.

그리고 농지개혁 후 자작농육성책이나 농지제도의 사후관리를 규정하는 제도 미비, 도시화·산업화에 따른 농민의 농촌이탈 등 여러 가지의 요인이 겹쳐, 1997년 말 현재 전체 농지의 192만 4000㏊의 43.5%인 83만 7000㏊가 다시 임차지(소작지)로 되돌아가, 농업정책의 새로운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1950년발해된토지개혁증
이당시발행지가증권은전쟁으로10%가격으로거래되기도했다

 


1945년 해방 이후 남과 북은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다. 자유를 억압하고 인권을 탄압하는 공산주의 독재 국가 북한과 자유와 민주주의에 기초한 경제 번영과 선진국의 길로 들어선 대한민국. 두 나라는 같은 언어, 역사, 인종을 공유하면서 어떻게 극단적인 두 나라로 갈라졌을까? 지난 70년 역사를 통해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고 지켜내기 위해 노력했던 이승만 대통령과 건국 1세대들의 희생과 투쟁을 조명한 작품이다.

※ 건국전쟁

  • 개봉 : 2024.02.01.
  • 등급 : 12세 관람가
  • 장르 : 다큐멘터리
  • 국가 : 대한민국
  • 러닝타임 : 1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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